한양 500년보다 고색창연 ‘부산 문화’

동길산 / 시인

글 동네 친구가 꽤 된다. 부산에도 꽤 되고 타지에도 꽤 된다. 타지에서 글 친구가 오면 대개는 바다로 간다. 광안리나 해운대 바다로 가서 싱싱한 회로 회포를 풀면 다들 감동이다. 바다를 끼지 않은 서울 같은 데서 오는 친구는 감동이 수평선까지 닿고 하늘 끝까지 닿는다.
시비를 거는 친구도 있었다. 어디 가도 그런 친구는 있기 마련이지만 글 동네는 좀 고단수다. 안 하는 척하면서 할 말 다 하고 좋은 말 같은데 곰곰 들여다보면 속을 뒤집는다. 서울 친구는 더 그랬다. 한국의 중심에서 활동한다는, 쉽게 말해 ‘내가 나다’라는 심보가 깔려 있지 싶다.
“부산에 고급한 문화가 뭐 있지?” 언젠가 술 몇 잔에 거나해진 친구한테 들은 질문이다. 얼핏 들어보면 몰라서 묻는 말 같지만 오백 년 도읍지 한양과 달리 갯비린내 나는 부산에 문화다운 문화가 있겠느냐는 핀잔이고 모멸이다. 이 지경에 이르면 은근히 부아가 치민다. 술 사주고 뺨 맞는 기분이 좋을 리 없다.
그때 내가 들먹인 게 정과정곡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 실렸던 시다. 고려가요 가운데 유일하게 지은이가 알려져 국보급 대접을 받는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우리 때는 대입 시험에 곧잘 나와 달달 외워야 했다. ‘내 임이 그리워 우나니’ 그 구절에 빠져 사춘기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것도 같다.
그 친구는 눈치가 빨랐다. 글 쓰는 친구라서 그런지 감을 얼른 잡았다. 정과정곡은 고려가요다. 그러니까 고려시대 작품이다. 오백 년 도읍지 서울의 문화가 아무리 고색창연한들 고려의 문화보다 고색창연할 수는 없다. 고려가요 정과정곡의 산실이 부산이다.
부산에선 정과정곡이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문화의 도시니 뭐니 백 마디 말보다 딱 하나, 정과정곡만 내세우면 된다.

조선시대에도 부산을 찾는 문인이 적지 않았다. 한양이나 내륙도시에서 유람 온 문인은 열흘이나 보름 동래 온천장에 머물며 갖은 대접을 받았다. 한양 권력 실세의 동향에 목매는 관리나 이름난 유림을 흠모하는 향반은 그들을 지극정성으로 모셨다. 글 좀 쓰는 친구가 부산 오면 과하다 싶게 술대접하는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갖은 대접 받으며 거들먹대던 그들도 머리를 조아리는 곳이 있었다. 고려 정자, 정과정이었다. 정과정곡 지은이가 지냈던 정과정은 조선 내내 충절의 상징이었다. 정자 주인은 정서(鄭敍). 고려 임금 인종과 동서지간이지만 줄을 잘못 서는 바람에 동래로 귀양 왔다. 수영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정자 짓고서 임금 그리는 사모곡을 거푸 썼다. 그러면서 정과정은 충절을 상징하는 조선의 성소로 자리 잡았다. 다들 일부러 찾아가서 머리 조아렸다.
정서는 동래정씨였다. 동래정씨를 동래로 귀양 보낸 것은 특혜라면 특혜였다. 그만큼 고려 조정은 정서를 예우했다. 임금이 바뀌어도 정서는 여전히 왕실의 일원이었다. 인종 다음 임금은 의종. 의종에게 정서는 이모부였다. 대왕대비 여동생의 남편이었다. 그러기에 막무가내 내칠 수 없어 동래정씨 세거지로 귀양 보냈다. 정서는 그게 또 고마워 임금 그리는 시를 썼다. 이 지점에서 의문이 하나 생긴다. 정서가 정자를 지은 곳은 수영강변. 구락리(求樂里)라 불리던 곳으로 수영강 이쪽이다. 망미동과 연산동 그 어디쯤 된다. 정자를 동래에 짓지 않고 하필이면 강 건너에 지었을까. 조선시대 지도는 그런 의문을 단박에 풀어준다. 옛날 옛적에는 망미동 일대가 동래였다. 고지도는 망미동 일대를 ‘고동래현지(古東萊縣址)’ 또는 ‘고읍성(古邑城)’ 등으로 표기해 그 옛날에는 거기가 동래였다고 밝힌다. “설마?” 동래는 예나 지금이나 부산의 중심. 망미동이 동래였다는 걸 믿지 못하는 사람은 왜 없을까. 지도는 그림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사진 한 장을 같이 들이대면 이내 수긍한다. 사진에는 고풍스러운 우물이 보인다. 망미동 병무청 주차장 자리에 있는 우물이다. 2003년, 2004년 이 일대를 발굴하다가 드러났다. 학계에선 통일신라 우물로 추정한다. 토성 등과 발굴된 우물 넷 가운데 둘을 병무청 주차장 자리에 복원했다. 하나도 파기 어려운 우물이 넷이나 있다는 것은 이 일대가 그 시절 중심지였다는 방증이다. 정과정이 나오는 옛 지도를 들여다본다. 옛 지도는 선이 하나같이 둥글둥글하다. 정과정 주위 수영강도 둥글둥글하고 동래고읍성도 둥글둥글하고 수영에 있던 좌수영성도 둥글둥글하다. 오래 들여다보면 마음마저 둥글둥글해지지 싶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지나치게 직선적으로 살았다. 설계용 T자로 그은 듯한 반듯하고 정연한 삶에 진저리날 때 고지도는 또 다른 안식을 준다. 개발로 인해 허물어지고 망가지기 전의 부산을 보는 즐거움이 크다.


동길산 dgs1116@hanmail.net
부산에서 태어나 초중고와 대학을 부산에서 나왔다. 1989년 무크지 <지평>으로 등단했으며 <꽃이 지면 꽃만 슬프랴> 등 시집 여섯 권과 <우두커니> 등 산문집 다섯 권, 그리고 한국 신발 100년사 <고무신에서 나이키까지> 등을 썼다. 국제신문·부산일보·한국일보에 부산의 길, 부산의 포구, 부산의 등대, 부산의 비석 등을 연재했다. 현재는 부산일보에 부산의 고개를 연재 중이다. 부산진구·수영구·동래구 구보와 부산문화회관 월간지 등에도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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