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크린케어 강혜정 대표

취재와 인터뷰/ 이성조(부산광역주거복지센터 이사)

(주)크린케어 강혜정대표를 만났다. 그는 입사 9년째로 10년차 사회적기업에서 5년째 대표를 맡고 있는 여성이다.

사회적기업 크린케어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해 주세요
크린케어는 2010년에 광역자활기업으로 창업했다. 아시다시피, 광역자활기업이란 시군구 단위로 운영되는 지역자활센터의 사업단 가운데 2개구 이상의 사업단이 결합하여 창업한 자활기업을 말한다. 주된 일은 대행청소와 홈크리닝, 소독방역작업 그리고 청소 및 소독관련 물품판매도 겸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두가 힘들었다. 특히 사회적경제기업은 더 어려운 상황인데 어떻게 버티고 있나요?
물론 우리도 힘들었다. 아시다시피 사회적경제기업은 평소에도 자금여건이 좋지 않는데 코로나19가 겹쳐 일거리가 연기되거나 취소되는 바람에 앞날이 막막하기만 하였다. 그렇지만 손 놓고 있을 수도 없었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평소에는 마음이 있어도 시간을 할애하지 못했던 사회공헌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 그래서 부산사회적기업연구원과 부산시 복지장책과의 협조와 지원을 받아 코로나19에 취약한 시설에 대해 소독방역작업을 적극 추진하게 되었다.

사회적기업 크린케어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해 주세요
크린케어는 2010년에 광역자활기업으로 창업했다. 아시다시피, 광역자활기업이란 시군구 단위로 운영되는 지역자활센터의 사업단 가운데 2개구 이상의 사업단이 결합하여 창업한 자활기업을 말한다. 주된 일은 대행청소와 홈크리닝, 소독방역작업 그리고 청소 및 소독관련 물품판매도 겸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두가 힘들었다. 특히 사회적경제기업은 더 어려운 상황인데 어떻게 버티고 있나요?
물론 우리도 힘들었다. 아시다시피 사회적경제기업은 평소에도 자금여건이 좋지 않는데 코로나19가 겹쳐 일거리가 연기되거나 취소되는 바람에 앞날이 막막하기만 하였다. 그렇지만 손 놓고 있을 수도 없었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평소에는 마음이 있어도 시간을 할애하지 못했던 사회공헌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 그래서 부산사회적기업연구원과 부산시 복지장책과의 협조와 지원을 받아 코로나19에 취약한 시설에 대해 소독방역작업을 적극 추진하게 되었다.

사회공헌은 수익과 반비례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었죠?
처음에는 수익과는 무관하게 위 두 기관의 협조 하에 장애인과 노숙자 시설, 그리고 미혼모 시설에 소독방역 서비스를 하게 되었다. 소독약품과 장비는 크린케어가 평소 보유하고 있던 것을 투입하였고 일하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실비도 지급할 수 있었다. 나라 전체가 긴장 속에 방역작업을 하는 데 우리도 작은 힘이나마 보탬이 되지 않았나 생각하면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고 본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쉴 새 없이 일하는 가운데(소독대상시설은 1천여 개)오히려 직원들의 사기도 높아졌고, 열심히 노력한 보람이 있었는지 크린케어라는 사회적기업의 인지도나 일거리 수주의 면에서 상당히 긍정적인 결과를 낳게 되었다.

강대표는 사회적경제에 대해 어떤 생각과 각오로 참여하게 되었나요?
처음 크린케어에 들어올 때는 사회적경제에 대해 전혀 몰랐다. 2011년에 입사했는데 그때 나에게 맡겨진 일은 장부정리, 전화받기, 문서 수발과 사무실 정리 등이었다. 구태여 규정하자면 나는 오로지 애 셋을 가진 여성 가장으로써 생계가 최우선이었다. 사회적경제에 대해서는 일하면서 나중에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십여 년이 훌쩍 지났고 어쩌다 보니 대표가 되어 있다.

어쩌다 대표가 되었다는데 실제로는 부산자활기업협회 회장(전국자활기업협회의 당연직 이사)이기도 하고 최근에는 또 중책을 맡았다지요? 2018년부터 부산자활기업협회 회장을 맡았고 올해 부산사회적경제유통센터 이사장직도 맡게 되었다. 내가 능력이 있거나 감투 쓰기 좋아해서 그런 것은 아니고, 다들 어렵게 사회적경제조직을 운영하고 있는 형편을 잘 알게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측면도 있고 이왕 하는 거 내가 손해 좀 더 보면서 열심히 하면 되지 않겠나 하는 마음이었다.

현장일 하랴 대표 역할하랴, 이거 보통 힘든 일이 아닌데 협회일까지 맡았으면 보통 힘든 수준이 아닐 걸로 생각하는데요?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버티고 있다. 오히려 다른 자활기업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어려울 때 같이 돕고 연대하는 것이 사회적경제라고 배웠다. 개인이나 자기 조직의 어려움만 앞세우면 아무 것도 이루어 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스스로 협력하고 조금씩 어려움을 나누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야 주위의 지지와 지원도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다.

크린케어를 이끌어 오면서 지금 가장 필요한 부분은 어떤 점이죠?
기획력이다. 사실 우리는 생계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지식이나 정보도 많지 않다. 그러나 오랬동안 현장 일을 하면서, 또 다른 지역 기업들과 대화를 하면서 청소업종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는 아이디어가 간간히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러나 이것을 사업화하기 위한 계획서를 만들어 내려고 하면 번번히 막힌다. 이를 뚫어줄 사람이나 시스템이 절실하다.

전문인력 지원제도가 있지 않나요?
당연히 시도해 봤다. 그러나 번번히 막히더라. 전문인력 제도를 집행하는 측에서 ‘무슨 청소업체에 기획전문가?’라는 반응만 돌아오더라. 한 부문에 십년 이상을 버텨온 소위 ‘중견사회적기업’에게 과연 무엇이 절실하게 필요한 지에 대해 현장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 보길 당부 드린다.

현재 직원구성은 어떻게 되나요?
상근직원은 14명이다. 상주청소에 아홉 분, 대행청소에 세 사람 그리고 총무다. 남성은 한 명도 없다. 하철기나 수요가 몰릴 때는 일용직을 쓰기도 하고, 최근에는 사회적경제기업간 네트워크를 통해 타 사회적기업의 인력을 활용하기도 한다.

전부 여성? 대행청소는 청소장비(세척기계, 스윙머신을 말하며 일명 ‘돌돌이’)의 무게도 만만치 않고 세제나 약품 용기가 대부분 한 말(18리터)이나 그 이상이라서 여성들에게 힘들지 않나요?
물론 장비나 세제,약품이 무겁다. 더욱이 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우리 여성들도 거뜬히 감당해 낸다. 그리고 홈크리닝 작업에는 오히려 여성이 가지는 꼼꼼함을 발휘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주거지방문 홈크리닝의 경우 여성만의 기업이라는 것이 단점이 아니라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다. 그렇게 긍정적으로 사업을 펼쳐 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가 남성 직원을 기피하는 것은 아니다. 한 때 4~5명이 남성직원이 있었지만, 하나 둘 퇴사하더라. 일은 힘들고 임금도 만족스럽지 못한데다가 작업시간이나 근로형태가 불규칙하니까 오래 못 버티는 것 같다. 우리 직원 한 분은 청소분야 달인이다.(보건복지부에서 선정하는 자활명장)

한때 직원이 수 십 명이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요?
학교상주청소 인원을 파견할 때는 60여명이 넘었다. 2018년 8월에 학교상주청소인원을 교육청에서 직고용하게 되어 기업으로서는 50여명의 인원이 퇴사하게 되었다. 물론 기업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시련이었지만 당사자로 보면 안정적인 일자리를 된 것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진일보한 측면이라고 본다.

그로 인해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요?
크린케어는 일자리창출형 사회적기업이다. 사실 학교로 상주청소인원을 파견해도 그로 인해 기업에 그다지 큰 수익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야말로 고용유지, 일자리창출에 주안점을 둔 것이기 때문에 교육청의 직접고용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우리는 그동안 해 오던 서비스의 확대 및 품질향상, 그리고 사업영역의 확장에 더 몰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한꺼번에 50여명 이상이 퇴사하면서 퇴직금 정산이 엄청난 문제도 대두되었다. 우리가 가입했던 퇴직연금의 유형이 직전 3개월 평균임금 기준방식이어서 장기근속자의 퇴직금이 예상 외로 많았다. 또 한 요인은 제도적인 문제인데, 학교상주청소의 경우는 방학기간은 급여를 지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퇴직금 계산시에는 그 기간이 모두 합산된다. 이로 인해 미리 준비해 두었던 퇴직적립금을 훨씬 상회하게 되어 버렸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작업하랴 돈 빌리려 다니랴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헤쳐 나왔는지 모르겠다. 수입이 발생하는 족족 퇴직금 정산을 하다 보니 시간이 꽤 걸렸고 마음고생도 심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전부 정리되었다. 그 과정에서 몇 년 동안 급여를 동결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급여동결을 감수하고 자신의 퇴직금 정산까지 뒤로 미루어 준 다수의 임직원들의 협조가 큰 힘이 되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고마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대표가 된지 5년(1회 연임)이 되었는데 대표로서 가장 큰 어려움이라면?
사회적기업은 끊임없이 ‘가치’를 생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가 가진 자본이나 정보, 혹은 기술력에는 한계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구성원들의 생계를 유지하면서 뭔가 의미있는 가치를 만들어 내려면 그야말로 전체가 합심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흔히들 공동체 혹은 공동체성을 많이 강조한다. ‘전체의 합심’이 되려면 반드시 누군가의 ‘양보’와 ‘희생’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말로는 공동체에 동의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이익을 따질 때만 공동체, 즉 평등한 분배를 강조하고 정작 그 바탕이 되어야 하는 ‘양보’와 ‘희생’는 전혀 모른 채 하는 것을 볼 때 속상할 때가 많다. 나 역시 부족한 사람이지만 우리 모두 이 점을 항상 같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크린케어에 들어오기 전에는 어떤 일들을 했나요?
나는 전남 장흥이 고향이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학교법인에서 4년, 그리고 생명보험회사에서 5년 근무했다. 생명보험회사를 그만 두고 집안 사정이 있어 잠시 쉬고 있는데 크린케어 전 대표님(강대표 이모님의 사위)과 연결이 되어 부산으로 오게 되었다. 남편도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아 애들은 장흥 친정집에 맡겨 두고 혼자 부산으로 와서 이모님 집에서 회사로 출근했다.

어린 자녀들을 친정에 맡기는 것이 쉽지 않았을텐데요?
그 당시 애들은 열세 살, 열한 살, 아홉 살이었다. 특히 막내가 눈에 밟혀 혼자 부산 걸음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가장으로써 뭐든 해야 했기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지금은 위로 둘은 대학생이고 막내는 고등학생이다. 사연이야 없지 않았고 애들 모두 어려웠겠지만 엄마를 이해해 주고 잘 자라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할 때가 많다.

기업대표이자 여성가장. 보통 한 가지도 쉽지 않을 건데 둘 다를 어떻게 병행하죠?
내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 가정(생계)과 기업활동을 병행하려고 노력해 왔다. 지금도 여전히 만만치 않은 조건이지만 애 키우는 것은 엄마로서 의무이자 운명이고, 기업 운영에 대해서는, 앞에서 말했듯이 누군가 눈에 보이지 않는 ‘조그만 양보’와 ‘작은 희생’이 있다면 함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 것같다.

청소? 우리가 잘 아는, 약간 귀찮고 번거러운, 그저 그저 쓸고 닦고 하는 일? 하지만 청소하는 이들의 노동형태나 환경, 무거운 장비와 세제/약품에 대해서 우리는 잘 안다고 할 수 없다. 최근에사 학교나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분들의 근로조건, 특히 열악한 휴게공간(식사 및 휴식)이 이슈화되기도 하지만. 그들이 정작 작업을 하는 시간에 우리와 거의 마주치지 않는다. 학교나 기업, 공공기관 할 것 없이 평일에는 아주 이른 새벽이고, 주말이나 방학(한여름과 한겨울이 피크), 야간 그리고 휴가철에 오다를 보낸다. 휴무가 별로 없는 상업공간은 영업종료 후(주로 밤 10시)를 선호한다. 당연히 자정을 넘겨야 일을 끝낼 수 있다. 무언가가 청소로 깨끗해지는 만큼 불규칙적인 작업일정으로 인해 일하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은 수시로 흐트러진다. 오직 생계를 위해 이 뒤틀림을 견뎌내는 이들이지만 사회적기업으로서의 ‘가치’와 ‘공헌’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크린케어에서 일하는 분들의 얼굴이 하나둘 떠오른다. 나도 한 때 거기서 함께 일했던 직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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