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역동적 정책 환경을 위한 단상

성향숙 (부산여성가족개발원장)

1. 프롤로그

오랫동안 대학 연구자로서 부산여성정책을 연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책과정에서 살아 움직이는 주체들의 실체, 합의하고 결정하는 방식, 예산형성과정, 집행결과 등 정책과정 메카니즘을 직접 경험하지 못했다는 한계가 늘 아쉬웠다. 2018년 지방선거에 즈음하여, 우연한 계기로 부산여성정책의 아젠더 생산에 참여할 수 있었다.
현재, 나는 부산시 산하 공공기관에서 일하고 있다. 사람들은 대학에서 일할 때가 좋은지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지금이 좋은지 묻곤 한다. 나는 망설임 없이 현재가 더 재미있다고 말한다. 왜냐면 정책 연구자가 실제로 정책이 작동되는 현실 속에서 산다는 것은 정책과정의 역동성을 수시로 보고 배울 수 있으며, 전문성을 기반으로 세상의 변화에 기여하는 실천가적 삶을 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서술하는 내용은 여성가족정책에 한정하지 않고, 폭넓은 정책과정 전반에서 보고 듣거나 직접 경험한 것들이다. 사실 공공기관에 현직으로 있으면서 이런 글을 쓰기 쉽지 않지만 경험을 공유하는 차원이라고 생각하고 개인자격으로 원고청탁을 받아들였다.

정책이해는 정책 환경 내 주체 간 상호작용 이해부터 출발

합리적이고 유용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시민의 행복한 삶을 창출하는 것이 정책의 목적이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정책 생산 주체는 고품질 정책을 개발하고, 생산된 정책을 사업/서비스로 전환하여 실행하는 기관은 서비스의 질과 다양성을 담보하면서도 사업/서비스 운용은 민주적이고 효율적이어야 한다. 최종적으로 남겨진 정책의 성과는 새로운 서비스의 창출을 위한 정책생산으로 환류되어야 한다. 이러한 상식적 수준의 정책과정이 현실에서 구현되려면 사람과 정책 환경이 잘 조율되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어떤 비전으로 정책적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가? 사람이 처한 환경에 따라 선택은 달라지고, 그 정책을 둘러싼 환경, 힘의 관계, 시민의 성숙도 등이 결국 정책을 결정한다. 사람과 환경의 상호관계성 속에서 정책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 정책형성과정: 좋은 아젠더 생산을 위한 조건

부산여성가족정책의 형성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좋은 콘텐츠, 좋은 정책 아젠더를 생산하는 것이다. 대체로 아젠더의 생산은 연구자의 몫인데, 연구자(혹은 연구집단)와 현장이 결합되어 있는 곳에서 선명한 이슈와 좋은 아젠더가 생산된다.
정책 연구자들은 대체로 현장과 결합하여 문제점과 대안을 모색하는 연구를 하는데, 부산 뿐 아니라 국내 대학 연구자(교수)들은 현장과 결합되기 어려운 구조에 있다. 대학은 입시자원의 부족에서 초래된 대학 살리기 프로젝트를 가동하면서 대학 연구자들에게 입시와 취업에 대한 강도 높은 업무를 부과한다. 이 문제는 대학 연구자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흔들고, 연구 활동에 많은 지장을 준다.
일부 대학 연구자들은 연구를 통해 현실 문제와 씨름하는 것을 정치적 특정 진영에 가담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이유로 정책과정에 들어오기를 꺼리는 사람이 많다. 나는 여성과 가족에게 필요한 아젠더를 생산하더라도 이것을 정책으로 실행시키기 위해서는 정치적 과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것이 특정 진영 논리에 함몰되는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보다 나은 현실을 만들기 위해 실천과 학문이 결합되지 않으면 학문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연구자들 마다 가치관과 세계관이 다를 수 있고, 합리적이고 실현가능한 접점을 만들면 될 일이다.

선거를 통한 정책의 공약화 그리고 퍼퓰리즘

유용한 콘텐츠를 정책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선거과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선거과정에서는 그동안 쌓여있던 이슈들이 부딪히고 변화하면서 아젠더로 자리잡게 되는데 선거를 통해 선택받은 집단이 내건 아젠더가 정책으로 전환된다.
나는 2018년 민선7기 인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여성·가족·아동·청소년 등의 관련 분야에서 제시되었던 공약(아젠더)을 부산시 정책으로 전환시키는 작업에 참여하였다. 그때를 돌이켜보면, 인수위 내부에서조차 각각의 분과위에서 꼭 필요한 정책을 사업화시키고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하게 논의하였다. 예를 들어, 보육정책의 일환으로 부산에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 첫째 아이부터 차액보육료를 지원하자고 주장하였지만 인수위 단계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둘째 아이부터 지원하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예산부족이 이유였다. 그러나 민선7기 출범이후, 부산시에서는 첫째 아이부터 차액보육료를 지급하였다. 차액보육료 지원을 통해 아이 키우는 부모들 사이에 갈라진 형평성의 문제를 상당히 해결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부산시는 출산기금을 이리저리 시뮬레이션하면서 생후 몇 개월 아이들에게, 어느 정도의 기간 동안, 얼마의 양육비(부산형 아동수당)를 지급할 것인지 타당한 근거와 기준을 찾아내고 토론하면서 다양한 의견수렴을 하였다.
마지막 넘어야 할 산은 포퓰리즘이라는 비난을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였다. 국가와 지자체가 기존에 지급하고 있는 양육비용을 조금 더 보완하여, 부산에서 공보육을 실현하자는 취지의 정책이 왜 포퓰리즘이란 비난을 걱정해야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현실은 그랬다. 이 문제에 대해 부산시 홈페이지를 통해 시민의견을 수렴한 결과, 이 정책안에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연령대가 달랐다. 아이를 키우는 젊은 부모 입장에서는 당연히 지지의사가 높았지만 그렇지 않은 연령대에서는 반대가 높았고 평균을 하니 반대의사가 조금 더 높았다. 최종적으로, 시민의 삶에 영향을 주고자 하는 정책의 형성은 최고의사결정권자의 가치지향, 실행력으로 뒷받침하는 공무원, 정책 아젠더를 둘러싼 의회·언론 등 관련 주체들의 방향성과 이해관계, 지역주민들의 성숙도, 시민사회단체의 영향력, 이 모든 것을 둘러싼 그 어딘가의 지점에서 결정된다.

3. 정책집행: 협치 파트너들 간 갈등과 협력

정책이 서비스 혹은 사업으로 전환되어 집행되는 과정은 정말 복잡다단하다. 정책집행 주체인 관료, 공무원을 먼저 생각해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공무원은 수행되어야할 정책을 최종적으로 결정하고, 예산을 편성하고, 예산의 특성에 따라 사업을 재구조화하는 기술이 있다는 점에서 전문성과 권한이 크다. 시민사회/활동가는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공무원 조직이 왜 적극적으로 예산을 확보하거나 사업을 추진하지 않는지 복지부동한다고 비판한다. 민간 또는 시민사회는 가치로 움직이지만 관료는 규정과 보상(인사, 승진, 성과급 등)으로 움직인다. 움직이는 기제가 서로 다르다. 관료 시스템 속에서 일하는 공무원도 조직 내 제약 속에서 일하고 있지만 민간영역에서 다 이해할 수 없다. 공무원은 시민사회 활동가, 전문가들이 행정을 너무 모른다고 말한다. 행정을 알아야 정책 메카니즘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공무원이 아닌 이상 행정을 그들만큼 알 수 없고, 행정이 가능하도록 시민단체와 협의하면 되는데, 턱도 없이 무시하는 태도를 보일 때가 있다. 협치가 보이지 않는 것은 서로의 상이한 기제가 결합되지 않기 때문인데, 최종의사결정자의 가치관과 리더십이 발휘되어야하는 지점이다. 공무원에게 고용안정과 적정급여를 보장하는 이유는 공적가치를 추구해야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사적가치에 휘둘리지 말라는 의미이다. 나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급여를 꼬박꼬박 받지 못한다. 자발성과 헌신성을 기반으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고, 협치를 주장하는 쪽도 대체로 시민사회 영역이다. 시민사회단체는 개입과 참여 전략을 통해 부산시 정책과정에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하는데, 아마도 0%∼100% 그 사이 어디엔가 공공과 시민사회의 힘겨루기 결과가 위치한다. 양 집단 간 언어의 차이가 있고, 언어의 차이는 경험의 차이에 기반하고, 본질적으로는 각자가 사는 세상에서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다. 상대가 잘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상대의 언어로 나의 논리를 관철시키기는 쉽지 않다. 서로 간에 상당한 수용성이 필요하다.

지방정부와 시민사회단체 뿐 아니라 의회, 언론, 노조, 공사영역의 재단/법인 등 수없이 많은 조직이 정책집행과정에서 협력하고 갈등한다. 먼저, 의회는 법을 통해 정책을 생산하는 기관이고 행정을 견제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의원이 조례개정/제정을 통해 만들어내는 영향력으로 부산시민의 삶을 향상시킨다. 모든 시민이 체감하지 못하겠지만, 가려지고 소외되었던 사람들에게 부산시 의회가 그들을 잊지 않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가시화시키는 것이다. 사명감을 가진 의원들과 협력했던 경험을 통해 우리 부산이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기도 하였다. 나는 언론을 권력기관으로 경험했다. 한쪽 말만으로 특정 상대를 평가하는 보도도 보았다. 언론과 문제가 있을 때, 그냥 원장이 한 대 맞는다 생각하고 넘어가라는 조언을 들었다. 싸워봤자 좋을 것 없다는 얘기였다. 나조차도 매일매일 쏟아지는 뉴스들을 일일이 다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냥 조언대로 따랐다. 때로는 나의 입장을 밝힐 기회를 우회적으로 찾는 노력을 하였다. 공공기관 장으로서 발언하기 부적절한 인터뷰 요청을 받기도 했지만, 공공기관의 장은 주어진 역할과 권한 속에서 일하고 발언의 수위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인터뷰를 진행하지 않았다. 높은 사람 눈치 보느냐는 비난도 감수했다. 노조활동과 관련해서, 그동안 부산시의 노동정책이 전무하였던 탓 때문인지 노조 활동 방식이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다는 생각보다, 일방적 주장에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올 9월이면 노동인권센터가 개소하니 점차 변화되는 모습은 지켜볼 일이다.

4. 협치에 기반한 슬기로운 모델들

부산시민, 부산여성의 삶이 조금이라도 변화되고 나아지도록 정책과정에 투입하는 모든 요소를 적절하게 조직화하는 것이 정책과정의 핵심이다. 합의된 정책을 실현시키기 위해, 정책과정에 참여하는 공공기관, 연구자, 시민사회, 의회, 언론이 각자의 권한/권력을 협력적으로 행사하는 것이다. 다양한 주체에 의한, 다양한 협치 모델이 많으면 많을수록, 착하고 좋은 정책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은 풍부해질 것이다.
한 사례를 제시하고자 한다. 민선7기 공약으로 양육비이행 관리원의 부산분원 설치를 제안하였다.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양육자를 지원하고 아동 양육권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이다. 인수위에서 민선7기 공약으로 선정하기 위하여 공무원과 처음 논의를 시작했을 때, 반대에 부딪혔다. 가능하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공약으로 채택하였고, 채택된 이상 어떤 형태로든 추진되어야 했다. 이 공약은 성격상 부산시와 중앙정부의 협력이 필요한 사안이었지만 중앙정부는 내몰라라 했다.
담당부서 공무원은 양육비 이행을 위한 법률 서비스 제공이 양육자의 가장 큰 고충사항이니 단기적으로 부산시가 이 문제를 해결하고, 중기적으로 이러한 업무를 기반으로 분원을 부산에 유치하자는 대안을 제시하였다. 부산여성가족개발원(이하 여가원)은 토론회에서 현실진단과 대안을 제시하였고, 양육비 이행을 바라는 당사자들이 직접 참여하여 피눈물나는 이야기를 쏟아내었다. 시의회는 관련 사업을 위해 예산편성과 조례개정에 앞장섰고, 언론은 양육비 문제를 공론화함으로써 시민인식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어떤 PD는 직접 여성가족부에 질의를 통해 양육비이행관리원의 부산 분원설치를 왜 안하느냐고 따지기도 하였다. 이 사안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후에도 시의회와 여가원에서는 한부모의 양육권, 인식개선과 관련된 토론회를 개최하면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설종사자, 시민사회활동가, 변호사, 교수들과 협력적 네트워크를 유지하고자 하였다. 모이지 않으면 생각이 흩어지고 다시 모이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5. 에필로그

우리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졌다면 느낀다면 그것은 정책성과이다. 시민 개개인의 삶이 나아졌는지를 판단하기 쉽지 않고, 체감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정책과정에 있는 다양한 주체와 시민소통이 중요하고 지속적으로 상호협력을 통한 연대를 만들어내야 한다. 최근에는 리빙랩, 시민성과보상제, 참여예산제 등 시민참여를 조직화하는 방식이 다수 개발되어 있다. 도출된 좋은 아젠더를 정책으로 전환시키고 다양한 주체들이 연대하여 정책과정에 참여한다면 시민의 삶은 변화될 것이다. 함께 노력하고 실력을 쌓아가자. 무엇보다 겸손한 자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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